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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현 최종 (4).jpg

네가 머무는, 바로 그 해변

​​최예은 X 메이릴리

사람이 없는 해변으로 가고 싶었다.

 

빽빽한 빌딩이 이룬 거친 수풀 사이에서 

많은 사람에게 치여 살던 내가,

단 하루만이라도 머리를 복잡하게 하는

모든 것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어

찾아온 섬이었다. 

네가 머무는, 바로 그 해변: 서비스

네가 머무는,
바로 그 해변

 

 

 

 

사람이 없는 해변으로 가고 싶었다.

 

빽빽한 빌딩이 이룬 거친 수풀 사이에서 많

사람에게 치여 살던 내가, 단 하루만이라

머리를 복잡하게 하는 모든 것으로부터 벗어

나고 싶어 찾아온 섬이었다. 자연의 아다움은

생각했던 것보다 보편적인 감상이는지, 해변

건너편에 형형색색의 블록처럼 여진 카페들과

그 주위로 모여 움직이고 사진을찍는 인파를 지나

좀 더 한적한 곳으로 들어갔다.바다의 한 쪽 구석

진 곳, 검고 가파른 바위의 한 모퉁이에 신발을 벗

고 파도 소리에 맞춰 눈을 감으려 했을 무렵이었다.

 

그 때, 노래 소리가 들려 왔다.

 

그제서야 밀려오는 파도와 더 가까운 곳에,

점처럼 가만히 앉아 있는 형체가 앉아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몽롱한 기분에 취해

한 걸음,한 걸음 다가가 보니 점은 무늬가 되었고,

그 무늬는 사람이 되어 일렁이는 아지랑이처럼

춤을 췄다.흰 원피스를 입고 맨발로 파도의 끝을

걸으며, 작은 기타 같은 악기를 들고 노래를 부르

는 여자였다. 여자의 목소리는 낮게 나는 새의

날개죽지 같기도 했고,하얀 모래를 간질이는 파

도 같기도 했다.산들바람처럼 내 귓가를 쓰다듬

는 그의 노랫소리에 매료된 것만 같아, 나는 한참

동안 가만히 서서 그 풍경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여자는 이윽고 노래를 끝냈고, 인기척을 느꼈는지

내 쪽으로 고개를 돌리고서 잠시 놀란 표정을 짓다

가 이윽고 활짝 웃어 보였다.

 

노래 잘 들었어요, 너무 멋있어요.

 

이런 식으로 그에게 말을 건넸던 것 같다.

고맙다는 말과 함께, 여자는 웃음을 터트려 보였다.

햇살처럼 말갛고 파도처럼 상쾌한 웃음이었다.

혼자 왔냐고, 그가 물었다.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여자는 더욱 반가운 기색을 띄며 내 앞으로 성큼

다가왔다. 자신도 혼자 왔다고, 이 참에 오늘은

같이 여행하는 것이 어떻냐고 여자가 물었다.

낯선 이와 어울린다는 상황 자체가 낯설었던 나였

지만, 조금 전 여자가 그려 내던 화창한 풍경의

일부가 될 수 있다면 그것도 재미있는 경험인 것

같아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그와 길을 떠났다.

 

렌터카의 옆자리에 그를 태우고, 해변을 따라 차를

몰았다.가는 길에 자신의 이야기를 조잘조잘 늘여

놓은 여자의 말소리가, 돌고래 떼처럼 헤엄쳐

귓가를 끊임없이 스쳐 왔다. 딱딱한 바다를 누비는

부표처럼 정처없이 도로를 내달리다 보니 배가 고파

왔고, 그래서 사람들이 줄을 서서 먹는 ‘맛집’에 차를

세우고 먹음직스런 돌문어 한 마리를 얹은 파스타도

먹어 보았다. 내 입맛에 딱 맞는다고는 할 수 없었지

만, 그의 만면에 어린 미소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청

명한 날씨를 닮아 있었다. 그 다음에는 근처에 있는

백사장을 함께 걸었다.

부드럽고 따끈한 모래가 발가락 사이를 파고드는 감

촉도 지겨워질 때 즈음,한적한 구석에 있는 벤치에

앉아 바다를 함께 보았다. 가장 맑은 날씨의 청명한

하늘과 티 없이 깨끗한 풀밭을 물에 풀어 놓은 것 같

은 빛깔을 띈 바다였다. 그는 수평선 너머 먼 곳을 바

라보며 다시 노래를 불렀고, 나는 그런 그의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처음 그를 봤을 때는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모든 감각으로 느껴졌다. 그의 머리

칼에서 나는, 물기 어린 내음이 향긋했다.

그가 노래하는 동안 손가락 사이로 튕겨졌다 잦아드

는, 빳빳한 네 개의 현이 작은 파도처럼 흔들렸다.

잔잔하고 고요하게 노래하는 그의 목소리가 그 작은

악기의 반주 뿐 아니라 저만치서 들려 오는 파도의

소리와 물새의 울음소리, 해맑게 웃는 아이들의 웃

음소리와 합쳐져 어떠한 합주 같은 음악이 되어 가

고 있는 것만 같았다.

그 음악 – 내 귀의 작은 교향곡 같은 그 음악을

으며 잠시 눈을 감았고

 

다시 눈을 떴을 때는, 노을이 지고 있었다.

 

하늘 위의 누군가가 건네는 거대한 꽃다발 같기도,

아주 많은 형형색색의 물감을 풀어 그려낸

그림 같기도 한 노을을 바라보며 돌아가고 싶지

않다,고 말했던 것 같다.

먼저 그 말을 꺼낸 사람이 나였을까, 아니면 여자였

을까. 오늘 재미있었다고, 꼭 연락해서 다시 만나자

는 인사도 똑같이 나누었던 것 같다. 하지만 그 때

흘러가듯 들었던 그의 이름도,

바닷바람에 따라 흩날리던 그의 머리칼과 햇빛을 닮

아 깨끗했던 웃음도, 수평선 너머로 사라지는 해처

그렇게 기억 속에서 저물어만 갔다.

그렇지만 그 때, 맑고 또렷하게 노래를 불렀던 그의

목소리만은 달빛처럼 기억 저 편에 은은하게 반짝이

고 있었다.그 기억은,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남아

간혹 내 머리 속에 아름다운 영화처럼 다시금 상영된다.

그 날의 그 아름다웠던 바다와,

현이 네 개였던 작은 기타 소리와 함께…

​​글 :최예은 사진: 메이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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